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글로벌 공급망 재편 시대, 한국 제조업의 생존 전략

by 하랑VI 2025. 6. 1.

 

지정학적 리스크와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제조업은 기존의 수출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야 하며, 안정성과 유연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전략 수립이 요구된다. 본문에서는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 요인과 한국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위기 속 생존을 위한 대응 전략을 제시한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한국 제조업의 생존 전략

끊어진 연결, 흔들리는 제조업 기반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의 안정성은 전 세계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 축이었다. 각국은 자신이 잘하는 부품을 만들고, 그것을 조립해 제품을 생산하고 수출하는 분업 구조는 세계화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었다. 그러나 2020년 팬데믹 이후 이 공급망은 심각한 균열을 드러냈고, 2025년 현재에도 그 충격은 계속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상수가 된 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기술전쟁, 중동 해역의 불안정성 등은 물류비 상승, 수출입 지연, 부품 확보 차질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 제조업 역시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자동차 부품 등 다수의 핵심 원재료를 특정 국가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공급망의 재편은 단순히 한두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통상 질서와 국가 안보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은 '친미 동맹국 중심 공급망' 전략을 추구하며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에 대응해 내수 중심 ‘쌍순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한국은 양국 모두에 깊이 얽혀 있는 복잡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한국 제조업은 더 이상 생산과 조립만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기술력 확보, 공급망 다변화, 데이터 기반 관리 시스템 등 새로운 전략 수립 없이는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공급망 충격이 한국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첫째, **부품·원자재 확보의 불안정성**이다. 한국은 반도체 소재의 80% 이상을 일본, 중국, 미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배터리 핵심 광물도 남미·아프리카 등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정치적 갈등이나 수출 규제 등으로 수입이 제한될 경우 생산라인 전체가 멈출 수 있는 구조다. 둘째, **물류비 및 재고관리 비용 상승**이다. 해운 운임의 급등과 항공물류의 병목현상은 제조업체의 생산원가를 대폭 끌어올리고 있으며, 이는 최종 제품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한편,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재고 축적은 비용 상승을 수반하며, 중소기업일수록 그 부담이 크다. 셋째, **납기 지연과 신뢰도 하락**이다. 공급망 불안정으로 인해 제품 납기가 지연되면 해외 바이어와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가고, 거래처가 경쟁국으로 이동할 위험도 높아진다. 특히 ‘정시 납품’을 생명으로 하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한 부품 부족으로도 전체 라인이 멈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넷째, **글로벌 수요 예측 실패**다. 공급망이 균열되면 수요-공급 예측이 더욱 어려워지며, 이는 생산계획 수립의 비효율로 이어진다. 특히 전자산업, 의류, 소비재 분야에서 이러한 수요 불일치는 재고 과잉 또는 품귀 현상으로 이어져 매출 변동성과 비용 상승을 유발한다. 마지막으로,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다. 공급망 충격이 지속되면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되고, 해외 생산비용 상승으로 인해 수출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일부 기업은 중국·베트남 등 저비용 지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했지만, 그 지역조차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해답이 되기 어렵다.

 

불확실성 시대, 제조업의 생존 전략은 무엇인가

지금 한국 제조업은 전환점에 서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는 단기적인 물류 문제를 넘어, 산업 경쟁력의 재편을 요구하는 구조적 위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공급망의 다변화와 국산화 비율 제고**다. 특정 국가에 대한 원자재·부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국가와의 다자간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핵심 소재·부품의 국산화를 위한 R&D 투자와 세제 혜택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스마트공장 및 디지털 SCM 구축**이다. 인공지능 기반의 수요예측 시스템, 실시간 재고관리, 자동 발주 시스템 등을 도입함으로써 불확실성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중소 제조업체에게는 정부 주도의 디지털 바우처와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국가 간 공급망 협약 체결 및 외교적 안정성 확보**다. 미국·EU·동남아·중남미 등 주요 국가와의 안정적 공급망 협력을 제도화하고, 전략물자에 대한 공동 비축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통상 외교와 산업 정책 간의 유기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넷째, **친환경·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산업 전환**이다. 단순 조립이나 저가 제품이 아닌, 기술 기반·지식 기반의 제품 생산으로 산업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이는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동시에 글로벌 ESG 규제에도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공급망 재편은 위기이자 기회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민첩하게 구조를 혁신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한국 제조업은 이 거대한 전환의 물결 앞에서, 수동적 피해자가 아닌 능동적 재설계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