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애플, 아마존 등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세금 부담은 회피하거나 최소화하고 있다. 이러한 조세 회피 전략은 조세 정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중대한 위협을 가한다. 본 글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조세 회피 구조와 그 경제적 파장을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협의인 디지털세의 도입 배경과 한국 경제에 미치는 실질적 필요성을 집중 조명한다.
세금은 누가 내야 하는가: 조세 정의의 균열
세계적인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세금 납부 실태를 들여다보면 현실은 전혀 다르다. 다국적 기업들은 ‘국제 조세의 회색지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세율이 낮은 국가에 법인을 설립하고, 이익을 이전함으로써 실질적인 조세 부담을 대폭 줄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을 경유하는 '더블 아이리시(Dutch Sandwich)'와 같은 조세 회피 구조가 있다. 이러한 구조는 불법은 아니지만, 법의 허점을 이용해 세금을 최소화하는 ‘합법적 탈세’에 해당한다. 문제는 그 부담이 고스란히 다른 중소기업, 개인 납세자, 그리고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OECD 통계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기업의 실효 세율은 전통 제조기업에 비해 50% 이상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세 정의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각국 정부의 재정 기반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디지털 경제에서는 ‘사업장이 없는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특성이 조세 회피를 더욱 용이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유튜브 영상 조회나 구글 광고 수익은 해당 국가에서 발생하지만, 그에 대한 법인세는 세율이 낮은 다른 국가에서 신고·납부된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적인 조세 체계가 더 이상 글로벌 디지털 시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이와 같은 글로벌 기업의 조세 회피 문제는 단순히 한 국가의 세제 이슈가 아니라, 국제적인 조세 질서 재편의 필요성을 촉진시키는 구조적 문제이다. 이에 따라 ‘디지털세’라는 새로운 조세 체계의 도입이 주요국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며, 이는 단지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디지털 경제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 장치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세 도입의 국제적 흐름과 한국의 과제
디지털세(Digital Services Tax, DST)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의 수익 창출이 발생한 국가에서 일정 비율의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 방식이다. 전통적인 법인세는 ‘물리적 고정사업장’이 있어야 과세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디지털 세는 온라인상에서 발생한 거래와 광고, 플랫폼 수수료 등의 경제적 활동에 직접 과세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OECD는 2021년, 130개국이 참여한 ‘포괄적 세원잠식 방지(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 BEPS) 2단계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디지털세 합의안을 발표하였다. 주요 내용은 초과이익에 대한 과세권을 시장 소재국으로 이전하고,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을 15%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는 조세 회피를 방지하고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국제적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디지털세 도입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첫째, 디지털 수익의 발생 기준을 정의하는 데 있어 국가 간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 예컨대, 어떤 사용자의 데이터가 수익 창출로 이어졌는지를 추적하는 기술적 한계, 다국적 기업의 회계 기준, 본사 위치 등에 따라 조세 적용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둘째, 미중 간 패권 경쟁 속에서 디지털세가 보호무역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자국 IT 기업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일부 국가의 디지털세에 보복관세를 예고한 바 있다. 한국 역시 디지털세 도입과 관련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현재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한국에서 막대한 광고 및 콘텐츠 수익을 올리고 있으나, 국내 법인세 부담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이로 인해 국내 IT 기업들은 역차별을 호소하며 조세 형평성 확보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OECD 합의안에 따라 디지털세 적용 기준을 준비 중이며, 동시에 국내 플랫폼 시장의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을 위한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디지털 세는 조세 정의 실현이라는 이상적 목적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의 안정성과도 직결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복지 지출 확대, 에너지 전환 투자 등의 재정 수요가 증가한 상황에서, 과세 기반을 디지털 경제로까지 확장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디지털 경제 시대의 조세 정의 실현
디지털세는 단순히 글로벌 기업의 세금을 더 걷자는 차원의 논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경제 질서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선언이자, 기술 진보에 맞는 제도적 보완책이다. 세계 경제가 디지털 기반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조세 체계만으로는 더 이상 조세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기술은 국경을 넘지만, 세금은 여전히 국경에 묶여 있다. 이 불균형은 디지털 경제가 성숙할수록 더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공조를 통한 새로운 조세 체계 구축은 단순한 정책이 아닌, 필연적인 진화다. 디지털 세는 그 출발점이며, 이 체계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각국 정부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경우, 디지털 세는 단순히 글로벌 기업에 대한 과세 문제를 넘어, 국내 기업의 경쟁력 보호, 재정 기반 강화, 조세 공정성 확보라는 여러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전략적 수단이다. 이를 위해 관련 법률 정비와 행정 인프라 구축, 기술적 대응 능력 향상이 병행되어야 하며, 조세 회피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세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공정한 시장을 위한 조건이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제도 역시 함께 진화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과제다. 이제는 기술과 자본의 이동보다, ‘책임’의 이동이 먼저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