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속에서, 각국은 자국 내 생산기지 회복을 위한 ‘리쇼어링(Reshoring)’ 전략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역시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 흐름에 합류하고 있으나, 실제로 리쇼어링이 국내 산업에 어떤 기회와 부담을 주는지에 대한 평가는 복합적이다. 본 글에서는 리쇼어링의 개념과 배경, 한국 제조업의 현실, 정책적 과제 및 글로벌 전략적 위치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왜 지금 리쇼어링인가? 글로벌 구조의 전환점
‘리쇼어링(Reshoring)’이란 해외로 이전했던 생산기지나 제조업 기반을 다시 본국으로 되돌리는 전략을 의미한다. 과거 수십 년간 기업들은 낮은 인건비와 넓은 시장 접근성을 이유로 중국, 베트남, 인도 등으로 생산 시설을 이전해 왔다. 그러나 팬데믹,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양한 지정학적 변수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심각하게 흔들리면서, ‘생산의 안정성’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은 국가 안보와 산업 독립성 강화를 이유로 자국 내 제조업 유치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인센티브 제공과 규제 완화, 첨단 기술 보조금 정책 등을 통해 기업들의 리쇼어링을 장려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여 ‘첨단산업 국내 복귀 지원 정책’, ‘스마트공장 확대’, ‘전략산업 특화단지 조성’ 등의 정책을 추진 중이다. 리쇼어링은 단순히 공장을 다시 국내로 옮기는 행위를 넘어서, 산업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 중심의 제조업 재편, 내수 기반 강화, 기술 인프라 집중화 등 다양한 구조 전환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으며, 특히 AI,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전략산업에서는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리쇼어링은 생산비 상승, 노동력 부족, 규제 환경의 복잡성 등 ‘비용의 귀환’이라는 리스크도 동반한다. 실제로 한국 기업 중 상당수는 리쇼어링 대신 제3 국으로 이전하거나 기존 해외 거점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는 ‘리쇼어링은 과연 한국 제조업에 얼마나 현실적인 전략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질 필요가 있다.
한국형 리쇼어링의 기회, 한계, 그리고 과제
리쇼어링은 이론적으로는 국내 일자리 창출, 산업 자립성 강화, 수출 의존도 감소 등 다양한 긍정 효과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선 구조적 한계를 넘어서는 정책적 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생산비 문제**다. 한국은 인건비, 부지 임대료, 에너지 비용 등이 해외 주요 제조국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이는 단순 조립이나 노동집약적 제조업의 리쇼어링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따라서 리쇼어링은 단가 경쟁력이 아닌,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고부가가치 제조업에 한정해 추진되어야 한다. 둘째, **인력 수급 문제**다. 국내 제조업은 숙련 기술 인력 부족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지방 산업단지에서는 청년층의 유입이 저조하며, 고령화 문제도 겹쳐 있다. 리쇼어링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직업 교육 시스템의 재정비, 산학협력 강화, 이주 노동자 제도 개선 등 노동력 공급 체계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셋째, **기술 생태계 구축**이다. 제조업의 핵심은 단일 기업이 아니라, 관련 부품·소재·장비 생태계 전체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리쇼어링을 넘어서, ‘산업 클러스터’ 형식의 유치 전략이 요구된다. 정부가 전략산업 특화단지를 집중 육성하고, 중소기업의 기술 역량을 강화해야 실질적인 파급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넷째, **정책 지속성과 규제 개혁**이다. 단기적 인센티브 제공만으로는 기업의 중장기 투자 결정을 유도하기 어렵다. 규제 환경이 불투명하거나 행정 절차가 복잡할 경우, 리쇼어링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따라서 정부는 ‘예측 가능성 있는 지원’과 함께 ‘디지털 기반의 스마트 규제 시스템’ 도입을 통해 신속하고 유연한 행정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리쇼어링은 단순한 기업 유치 경쟁이 아니라, 산업 전략과 국가 경쟁력 재정비를 위한 구조적 과제다.
리쇼어링은 전략인가, 환상인가?
리쇼어링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시대에 제기된 새로운 제조업 전략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단절 가능성, 자국 우선주의의 부상, 첨단 산업 주도권 경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각국은 다시 제조업을 국내로 불러들이려는 흐름에 돌입했다. 한국 역시 이러한 대전환의 흐름에 합류하고 있으나, 단순 모방이 아닌 ‘한국형 리쇼어링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 우리는 리쇼어링을 단지 생산시설 이전의 개념이 아닌, **기술 중심의 산업 고도화 전략**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을 포함한 산업 생태계 전체를 고려한 유기적 접근, 인재 확보와 직업 교육 시스템 개편, 지역 거점 산업 활성화 등의 종합적 전략이 요구된다. 특히 ‘기술·사람·공간’이 균형 있게 설계되어야만 리쇼어링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또한, 리쇼어링은 단기적인 고용 창출이나 정치적 메시지를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진정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산업의 질적 전환**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리쇼어링은 양적 복귀가 아니라, **질적 리디자인**이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리쇼어링의 성공 여부는 국가의 산업 전략, 기업의 혁신 역량, 그리고 정책의 일관성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생산의 귀환’이 아니라, ‘경쟁력의 귀환’이다. 리쇼어링은 선택이 아닌, 변화에 대응하는 하나의 전략적 수단이자 경제 체질 전환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환상’이 되지 않도록 치밀한 설계가 필요하다.